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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서재] 죽어가던 딱따구리와 친구가 된 생물학자

관리자 2026-07-30 조회수 81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윌북)

숲길을 달리던 생물학자가 땅에 떨어진 딱따구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새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딱따구리를 오두막으로 데려와 먹이고 돌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까지 생겼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와 그가 구조한 딱따구리의 이야기다. 딱따구리는 하인리히에게 연구 대상인 동시에 숲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었다. 큰까마귀와 꿀벌, 황자작나무와 다람쥐, 송장벌레와 달팽이도 마찬가지다. 하인리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논문이나 이론이 아니라 숲속의 일상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는 하인리히가 평생 숲에서 관찰한 생명에 관한 기록이다. 마흔 무렵 대학 정교수직을 내려놓고 미국 메인주 숲에 오두막을 지은 그는 그곳을 집이자 실험실로 삼았다. 책에는 숲속 동식물을 직접 관찰하며 그린 세밀화 20점도 함께 실렸다.


하인리히의 연구 방식은 단순하지만 집요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기다린다. 송장벌레 부부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동물 사체를 어떻게 옮기는지 확인하기 위해 땅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지켜보고, 상모솔새가 혹한을 어떻게 견디는지 알아내려고 겨울밤 나무에 올라 둥지 구멍을 하나씩 살핀다.


애벌레가 잎에 남긴 흔적을 암호처럼 분석하고, 절벽 근처에 굴을 파고 들어가 새 둥지를 조사하기도 한다. 몇 초 만에 터지듯 꽃을 피우는 노랑꽃창포의 원리가 궁금하면 개화 과정을 추적한다. 


아프리카 야생 보호구역에서 유독 모파네 나무만 무성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코끼리와 나무의 관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관찰한 결과 코끼리에게 쓰러지고 뜯어 먹힌 모파네는 쉽게 죽지 않았다. 땅에 남은 뿌리에서 다시 살아나 쓰러진 몸통을 따라 새로운 뿌리와 가지를 낸다. 한 그루였던 나무가 여러 그루처럼 되살아나는 셈이다. 파괴로 보였던 코끼리의 행동이 오히려 모파네가 번성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연의 관계가 인간의 단순한 선악 구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숲에서 발견된 것은 경쟁만이 아니다. 생명은 서로 잡아먹고 밀어내면서 동시에 의존하고 협력한다. 하인리히는 책에서 “유기체는 상호 의존하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월등히 우세한 일은 드물다”고 설명한다. 한쪽이 다른 쪽을 계속 착취하면 관계뿐 아니라 “게임 자체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통찰은 변소로 쓸 구덩이를 파다 만난 딱정벌레 한 마리에서 시작된다. 딱정벌레는 달팽이와 연결되고, 달팽이는 풀과, 풀은 토양과, 토양은 다시 배설물과 이어진다. 숲에서는 버려지는 것도 홀로 존재하는 것도 드물다. 한 생명의 끝은 다른 생명의 조건이 된다.


책의 중심에는 하인리히가 특히 사랑한 큰까마귀가 있다. 그는 큰까마귀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을 다른 행성으로 난 창문을 찾는 것에 비유한다. 인간과 전혀 다른 감각과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존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큰까마귀를 인간처럼 쉽게 의인화하지도,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낮춰 보지도 않는다. 책에서 자연주의 작가 헨리 베스턴의 말을 인용해 동물은 인간의 형제도 하급자도 아니라 “삶과 시간의 그물에 함께 갇힌 다른 족속”이라고 강조한다. 동물을 이해하려면 친숙함만큼이나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숲의 관찰자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의 새로운 이웃이기도 했다. 오두막 근처에 피비 한 쌍이 둥지를 틀자 매일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둥지를 노리는 다람쥐나 알을 몰래 낳으려는 새가 나타나면 대신 쫓아주기도 한다. 겨울이면 오두막으로 들어오는 파리와 사슴쥐도 성가신 침입자가 아니라 생애를 관찰할 새로운 이웃이 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하인리히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나도 죽기 전에 이런 책 한 권을 쓰고 싶다”고 썼다.


소설가 천선란은 이 책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안내서로 소개한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정보만 골라 보도록 진화했지만, 삶을 누린다는 것은 길가의 들꽃 이름을 알고 나무 한 그루의 변화와 새 한 마리의 습관을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추천의 글에서 “이 한 권으로 우리는 지구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인리히에게 숲은 낭만적인 도피처가 아니다. 먹고 먹히고, 죽고 되살아나며, 경쟁하고 협력하는 생명의 현장이다. 그는 나무만을 숲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쓰러진 고목과 그 안에서 사는 벌레, 새가 남긴 깃털과 땅속 균류까지 제 수명을 다하도록 두는 것이 진정 숲을 가꾸는 일이라고 여긴다.


매일 보고 듣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된다. 하인리히는 숲을 연구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숲 역시 그를 생물학자이자 자연작가로 만들었다.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는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 어떻게 이해와 애정, 뜻밖의 우정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숲의 질서는 멀리 있지 않다. 죽어가는 딱따구리 한 마리를 멈춰 바라보는 순간, 땅 위의 송장벌레를 따라 시선을 낮추는 순간 시작된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오래 바라보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출처 : 뉴스펭귄(https://www.newspenguin.com)